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권위 있는 내구 레이스, 르망 24시. 1923년 첫 대회가 열린 이후 매년 프랑스 사르트 서킷에서 진행되는 이 레이스는 단순한 ‘자동차 경기’가 아닌 기술과 인내, 그리고 브랜드의 명예가 걸린 전장으로 불린다. 아우디, 포르쉐, 토요타 등 세계적인 제조사들이 이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고, 일부 기술은 실제 양산차에도 적용되며 자동차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 업계와 르망 24시의 인연은 아직 미미하다. 한국 팀이나 드라이버가 정식 출전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국내 팬들에게 르망은 여전히 낯선 무대였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통해 2026년 세계 내구 레이스 챔피언십(WEC) 진출을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르망 24시 출전으로 이어진다.
현대·제네시스, WEC 도전 선언
현대차그룹은 2023년 제네시스 브랜드를 앞세워 2026년 WEC 하이퍼카 클래스에 참가한다고 발표했다. 하이퍼카 클래스는 현행 르망 24시의 최상위 카테고리로, 토요타 GR010 하이브리드, 페라리 499P, 푸조 9X8, 포르쉐 963 등이 출전하는 무대다.

제네시스가 이 무대에 출전하게 되면, 한국 브랜드 최초로 르망 24시 종합 우승을 노리는 ‘메이저 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참여가 아니라 현대차그룹이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를 글로벌 최정상 반열에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행보다.
한국 기업의 첫 F1 도전, 그리고 르망?
사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모터스포츠에 발을 들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을 통해 F1 팀을 스폰서하며 한국 기업 최초로 F1 무대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르망 24시에는 지금까지 본격적인 도전이 없었다.
그 배경에는 내구 레이스의 특수성이 있다. F1과 달리 르망은 24시간 동안 차량의 내구성과 연비, 팀워크, 전략까지 모두 검증하는 무대다. 특히 대규모 엔지니어링 역량과 막대한 투자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에서 ‘기술 자신감’이 없는 기업은 쉽게 도전할 수 없다.

“언젠가 르망에 태극기가?”
현대·제네시스의 르망 24시 참가는 단순히 브랜드 마케팅을 넘어,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전망이다. 일본은 토요타를 통해 이미 5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글로벌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되었고, 유럽 브랜드들은 르망에서의 성과를 곧 ‘브랜드 헤리티지’로 활용한다.

만약 제네시스가 2026년 이후 르망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한국 브랜드로서는 사상 최초의 쾌거가 된다. 더 나아가 한국 국적 드라이버가 팀에 합류한다면, 르망 스타트 라인에 태극기가 등장하는 역사적 장면도 기대할 수 있다.
남은 과제
다만 도전 과제도 분명하다. 토요타, 페라리, 포르쉐 등 이미 경험과 성과를 축적한 제조사들과의 경쟁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제네시스가 글로벌 모터스포츠에서 브랜드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투자, 장기적인 비전, 그리고 팬 베이스 확장이 필수적이다.
르망 24시는 단순한 레이스가 아니라, 한 나라의 기술력과 브랜드가 글로벌 무대에서 검증받는 곳이다. 이제 한국 자동차 산업도 본격적으로 이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언젠가 르망 포디엄에 태극기가 휘날릴 수 있을까?”라는 기대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