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해변의 안전을 지키는 라이프가드처럼, 포뮬러 원(F1)에도 선수들의 안전을 지키는 존재가 있다. 바로 세이프티카(Safety Car)다. 단순히 사고 현장을 정리하는 차 이상의 의미를 갖는 세이프티카는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전략적 변수가 되기도 한다.
세이프티카의 등장 조건
세이프티카는 레이스카가 갑작스럽게 멈추거나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혹은 짙은 안개 같은 악천후가 발생했을 때 투입된다. 레이스 전체를 중단할 정도는 아니지만 안전이 필요할 때, 레이스 디렉터가 출동을 명령한다.
이때 세이프티카는 오렌지색 경광등을 켠 채 트랙에 진입해 선두 앞에서 속도를 늦추며 랩을 리드한다. 모든 레이스카는 추월 없이 세이프티카 뒤에 정렬해야 하고, 백마커(뒤처진 차량)는 앞질러 가서 대열의 후미에 합류해야 한다.

레이스 재개 과정
상황이 정리되면 ‘세이프티카 인 디스 랩(SC in this lap)’ 메시지가 전해지고 경광등이 꺼진다. 이후 선두 차량이 페이스를 주도하다가 컨트롤 라인을 통과하는 순간 경기가 다시 시작된다.
VSC, 가상의 세이프티카
F1에는 버추얼 세이프티카(VSC)도 있다. 실제 차량은 나오지 않고 전자 신호만으로 속도가 제한된다. 드라이버는 스티어링 휠 계기판에 표시되는 ‘델타 값’을 보며 정상 랩타임 대비 약 30% 느린 속도로 달려야 한다.
이 방식은 즉각 발동할 수 있고, 드라이버 간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에 선두가 억울하게 격차를 잃지 않는 장점이 있다.

SC 상황이 바꾸는 전략
세이프티카가 등장하면 대부분의 팀은 타이어 교체를 고려한다. 느린 속도로 주행하는 동안 피트 스탑 손실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몬자 서킷에서는 정상 상황에서 피트 스탑 시 24초 손해를 보지만, SC 상황에서는 약 17초만 손해를 본다.
다만 무조건 유리한 것은 아니다. 아직 타이어 컨디션이 양호하다면 굳이 교체하지 않고 순위를 지키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드라이버들의 부담
세이프티카 뒤에서 천천히 달리면 타이어 온도와 브레이크 시스템이 식어 성능 저하를 겪는다. 선수들이 세이프티카의 속도를 “너무 느리다”고 불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와 메르세데스의 조지 러셀은 “애스턴마틴 밴티지가 AMG GT 블랙 시리즈보다 랩당 5초 느리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
현재의 세이프티카 라인업
2023 시즌 F1 세이프티카는 두 모델이 투입된다.
- 메르세데스 AMG GT 블랙 시리즈 : 4.0L V8 트윈터보, 730마력, 제로백 3.2초, 최고속도 325km/h
- 애스턴마틴 밴티지 : 4.0L V8, 503마력, AMG GT보다 느리지만 독자적 존재감 유지
세이프티카는 6점식 안전벨트, 라이트 시그널링 바, 무선 통신 장치 등 특별한 장비로 개조되어 운용된다.
세이프티카의 파일럿
2000년부터 F1 세이프티카 드라이버를 맡아온 인물은 베른트 마이렌더(Bernd Mayländer)다. 독일 투어링카 출신의 전직 레이싱 드라이버로, 그의 옆 좌석에는 레이스 컨트롤과 직접 통신하는 엔지니어 리차드 다코가 탑승한다.
트랙 위의 ‘보이지 않는 심판’
세이프티카는 단순한 안전 차량을 넘어, 경기 흐름과 전략까지 좌우하는 트랙 위의 라이프가드다. 다음번 그랑프리에서 오렌지색 경광등을 켠 세이프티카가 등장한다면, 그 뒤에 숨겨진 치밀한 규칙과 전략을 떠올려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