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수많은 자동차 서킷 중 ‘전설’이라 불리는 장소가 있다. 바로 포뮬러 1(F1) 그랑프리의 본고장, 영국의 실버스톤 서킷(Silverstone Circuit)이다. 모터스포츠 팬들에게는 ‘성지’로 통하는 이곳은 단순한 레이싱 트랙을 넘어, 자동차 문화와 기술 진보의 역사 그 자체로 평가받는다.
활주로에서 세계 무대로… 실버스톤의 시작
실버스톤 서킷은 본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왕립공군(RAF)의 비행장이었다. 1943년 군용 활주로로 사용되던 이 기지는 전쟁이 끝난 후, 1947년 인근 마을의 자동차 애호가 11명이 모여 비공식 레이스를 열며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이들은 건초더미로 트랙을 구획해 놓고 자신들만의 경주를 벌였고, 그 경험이 실버스톤의 역사적인 출발점이 됐다.

정식 레이싱 트랙으로서의 실버스톤 서킷은 1949년 공식적으로 개장되었고, 이후 포뮬러 1의 첫 번째 월드 챔피언십 레이스가 열린 1950년 영국 그랑프리의 무대가 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실버스톤, F1만의 무대가 아니다
오늘날 실버스톤은 F1 외에도 다양한 국제 모터스포츠 대회가 열리는 종합 레이싱 시설로 자리 잡았다. MotoGP, 월드 슈퍼바이크 챔피언십(WSBK), 유럽 F2, 영국 F3, 인터내셔널 포뮬러 3000, 영국 투어링카 챔피언십(BTCC) 등도 이곳을 찾는다. 한 마디로, 세계적인 모터스포츠의 교차로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트랙
실버스톤 서킷은 처음에는 비교적 단순한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성과 관람 편의성을 중심으로 꾸준히 개선되어 왔다.
특히 1994년 아일톤 세나의 사망 사고 이후, 전 세계 레이스 트랙이 안전 강화를 모색하던 시기에 실버스톤 역시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직선 구간은 곡선으로 완화되었고, 시케인(연속 코너 구간)이 도입되어 속도를 분산시키는 구조로 재설계되었다.

또한 2011년에는 F1 영국 그랑프리를 앞두고 현대적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관람석, 피트, 패독 등 전반적인 시설이 업그레이드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마곳-베켓-채플, 전설의 코너 구간
실버스톤 서킷에서 가장 유명한 구간은 단연 마곳(Maggotts), 베켓(Becketts), 채플(Chapel)로 이어지는 3연속 고속 슬라럼 코너다. F1 드라이버들에게는 기술과 담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코스로 알려져 있으며, 팬들 사이에서도 ‘레전드 코너’로 불린다.

이 구간은 왼쪽으로 빠르게 꺾이는 마곳에서 진입해, 오른쪽으로 진동하는 베켓을 지나, 마지막 채플 커브를 통해 다시 직선 구간으로 탈출하게 된다. 시속 250km를 넘나드는 이 고속 구간은 경기 중 추월과 실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다.
역대 최고의 랩 타임은?
현재 실버스톤 서킷의 가장 빠른 랩타임은 2018년 영국 그랑프리 예선에서 루이스 해밀턴이 기록한 1분 25.892초다. 이 기록은 해밀턴의 명성과 함께 실버스톤 서킷의 위상을 다시금 높이는 계기가 됐다.

실버스톤 서킷은 단순한 F1 경기장 이상이다. 역사, 문화, 기술, 열정이 교차하는 이 상징적인 공간은 모터스포츠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과서다.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진화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레이스를 가능하게 하는 이곳은 앞으로도 전 세계 팬들의 심장을 뛰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