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스탑 2초의 마법, ‘언더컷(Undercut)’은 어떻게 판을 뒤집는가 – 모터넥스트 모터넥스트 Motor Next | 자동차·오토바이 정보의 모든 것

피트스탑 2초의 마법, ‘언더컷(Undercut)’은 어떻게 판을 뒤집는가

레이스 후반, 선두를 달리는 A차량과 그 뒤를 1.5초 차이로 바짝 추격하는 B차량이 있습니다. B차량은 아무리 애를 써도 트랙 위에서는 A차량을 추월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B차량이 갑자기 피트(Pit)로 뛰어들어 타이어를 바꿉니다. 깜짝 놀란 선두 A차량도 다음 랩에 부랴부랴 피트인을 하고 코스로 복귀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분명 피트인 전까지 1.5초 앞서 있던 A차량이, B차량의 꽁무니 뒤로 합류하고 맙니다. 트랙 위에서는 단 한 번의 추월 시도도 없었는데 말이죠.

마술처럼 순위가 뒤바뀌는 이 현상, F1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짜릿한 전략인 ‘언더컷(Undercut)’의 과학을 데이터로 해부해 봅니다.

트랙 위 추월이 지옥인 이유: 더티 에어의 늪

언더컷이 위력적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왜 그냥 트랙 위에서 앞차를 제치지 않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F1 레이스카는 엄청난 양의 공기를 가르고 지나가며 뒤쪽에 난기류, 이른바 ‘더티 에어(Dirty Air)’를 만들어냅니다. 뒤따르는 차가 앞차와 1초 이내로 가까워지면 이 엉망진창인 난기류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공기가 깨끗하게 흐르지 않으니 다운포스가 급감하여 차가 코너에서 밖으로 밀려나고, 엔진과 브레이크는 제대로 냉각되지 않아 과열되며, 타이어는 미끄러지면서 표면이 다 뜯겨나갑니다(그레이닝).

즉, 실력이 비슷하다면 뒤따라가는 차는 앞차보다 압도적으로 페이스가 빠르지 않은 이상, 트랙 위에서 정면 승부로 추월하는 것은 타이어만 갉아먹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서 엔지니어들은 기발한 해답을 찾습니다. “트랙 위에서 싸우지 말고, 피트스탑 타이밍으로 시간을 벌자.”

그립(Grip)의 마법: 새 타이어와 헌 타이어의 델타(Delta)

언더컷의 핵심은 물리적인 ‘타이어의 그립(접지력) 차이’에서 나옵니다.

20랩을 굴러 마모될 대로 마모된 헌 타이어와, 방금 타이어 워머에서 꺼낸 끈적끈적한 새 타이어의 성능 차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서킷에 따라 다르지만, 새 타이어를 장착하면 랩당 랩타임이 적게는 1.5초에서 많게는 3초까지 빨라집니다.

언더컷은 바로 이 ‘단 1랩 동안 발생하는 압도적인 랩타임의 격차(Delta)’를 무기로 앞차를 베어버리는 암살 전략입니다.

데이터로 보는 언더컷 알고리즘

앞서 언급한 A차량(선두)과 B차량(추격자)의 랩타임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통해 언더컷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전제: 두 차의 간격은 +1.5초)

  1. 추격자(B)의 피트인 (Lap 20): B가 기습적으로 피트인을 합니다. 약 2.5초 만에 새 타이어로 교체하고 코스로 복귀합니다.
  2. 마법의 1랩 (Lap 21): – 선두(A)는 여전히 헌 타이어로 트랙을 돕니다. 랩타임은 1분 20초 000입니다. (In-lap)
    • 코스로 복귀한 추격자(B)는 새 타이어의 압도적인 그립을 쥐어짜 내며 미친 듯이 달립니다. 랩타임은 1분 17초 500입니다. (Out-lap)
  3. 선두(A)의 뒤늦은 대응 (Lap 21 끝): 선두 A도 상황을 파악하고 부랴부랴 피트인을 합니다. 타이어를 2.5초 만에 갈고 나옵니다.
  4. 결과: 단 1랩 만에 B차량이 A차량보다 2.5초를 더 빨리 달렸습니다. 기존 간격이었던 1.5초를 지워버리고도 오히려 1.0초를 역전했습니다. A차량이 피트레인을 빠져나올 때, B차량은 이미 시속 300km로 A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래프 해설: Lap 21에서 새 타이어를 신은 B차량의 랩타임이 수직 하강하며, 헌 타이어로 버틴 A차량과의 엄청난 시간 차이(델타)를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타이어 웜업의 변수

이처럼 완벽해 보이는 언더컷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타이어 웜업(Warm-up)’ 이슈입니다.

피트스탑 직후, 새 타이어의 온도가 ‘작동 창(Working Window)’인 90도~100도까지 오르지 않으면 타이어는 얼음판 위의 구두처럼 미끄러집니다. 특히 최근 하드(Hard) 컴파운드의 경우 열을 올리는 데 1~2랩이 걸리기도 합니다.

만약 B차량이 새 타이어를 끼고 나왔는데 온도가 오르지 않아 첫 랩(Out-lap)에서 쩔쩔맨다면? 오히려 헌 타이어로 열이 바짝 올라 있는 A차량이 다음 랩에 더 빠른 기록을 내며 순위를 방어해 버립니다. 이를 역으로 이용해 피트인 타이밍을 늦춰 승리하는 전략을 ‘오버컷(Overcut)’이라고 부릅니다.

F1은 타이어 4개를 달고 시속 300km로 달리는 거대한 체스 게임입니다. 드라이버가 스티어링 휠과 페달로 싸우고 있다면, 피트월의 전략가(Strategist)들은 수만 개의 타이어 열화 데이터와 실시간 랩타임 알고리즘을 계산하며 보이지 않는 수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피트스탑 타이밍이 엇갈리는 바로 그 ‘마법의 1랩(Out-lap)’ 동안 두 차량의 섹터 타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트랙 위 추월보다 훨씬 더 숨 막히는 두뇌 싸움의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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